[필사]태평양 횡단특급
듀나 혹은 이영수
1
내가 태어난 곳은 베이징을 막 지나는 유라시아 횡단 특급의 B-27번 침대차 2번 객실이었다. 내가 첫 생일을 맞은 곳은 치첸이차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질주하는 산타 빅토리아 호의 식당칸이었다. 내가 속 좁은 마야인 가정교사에게 시달리며 물리학을 배우던 곳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도버 터널 안에서 미적거리던 플렌테지네트의 별호 2번 객차였고, 지금은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시민군 장교와 첫 키스를 한 곳은 시베리아의 타이가 위에 솟은 고가 철교 위를 달리는 예카테리나 호의 지붕 전망실이었다. 나는 지중해 황단특급의 기관실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칼레발 가봉행 방탄 열차 안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인도네시아 국경을 통과하는 만덜레이 호의 중역실에서 회사의 기밀을 만주국 정보부에게 팔아넘기려던 남편을 처형했다. 내 인생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가끔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철로 밖에 있는 단단하고 고정된 땅에서 있어야 할 때는 말로 할 수 없는 두려움과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철로에 속해 있었고 철로 또한 나에게 속해 있었다.
나는 해가지지 않는 제국의 통치자다. 오대양 육대주 모든 곳에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너비는 겨우 6.8미터밖에 되지 않는 제국, 380년 전에 러시아 어딘가에 설립된 이후로 이 제국은 설립자로부터 그의 아들에게로, 그의 딸에게로, 그녀의 사위에게로, 그의 애인에게 흘러 들어왔다.
이 제국의 정식명칭은 국제철도회사다. 얼마나 안전하고 지루하게 들리는 이름인가. 얼마나 얌전하고 기만적인가. 만약 교외의 집과 회사를 오가는 평범한 평사원이라면, 그래서 그 짧은 거리를 오가는 데 우리 회사의 철도를 이용하는 평범한 평사원이라면, 그래서 그 짧은 거리를 오가는 데 우리 회사의 철도를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이라면, 국제철도회사는 단순한 운송 수단을 제공해주는 수많은 회사들 중 하나에 불과하리라.
그러나 그런 그도 열차에서 내리기 위해 3등 객실에서 빼곡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일본인 정치범들이나 에스파냐인 망명객들을 지나칠 때면, 자신이 완벽한 치외법권 지대를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 국제철도회사의 레일과 그 열차들은 우리의 영토다. 우리가 관리 하며 우리가 통치한다. 그 평범한 회사원이 열차에 타려고 티켓을 끊을 때, 그는 한 제국으로 들어가는 비자를 받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려는 바보 같은 시도가 있었다. 42년 전 고려인들이 바로 그 어리석은 짓을 했다. 그들이 철도 국유화 선언을 하고 우리 직원들을 역에서 쫓아낼 때, 회사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는 고려를 지나가는 모든 철로들을 차단하고 말없이 기다렸다. 고려인들은 아마 바다를 믿었을 것이다. 아마 소 내장을 가스로 채운 엉성한 풍선인 비행선인가 하는 것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단순한 철도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다른 운송 수단들에 우리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음이 분명하다, 넉 달 뒤 수백 명의 아사자가 생기자 그들은 우리에게 항복했고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기도 전에 정부가 뒤집혔다. 고려인들은 옛 지도자들의 목을 국제철도회사 개성 지부 건물의 깃대에 매달았다.
고려인들의 만용은 아버지가 즐겨 이야기 하는 일화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들을 부채꼴 모양으로 앉혀놓고 이 잔인한 이야기를 ‘생쥐와 호박 요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쾌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어떻게 고려인들이 우리 회사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을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나는 지금 그 모든 일들을 회사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아버지가 뒤에서 조작했다고 믿는다.
2
남편과 나는 아프리카 해변 철도에서 만났다. 코트디브아르 어딘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 만나기 한 달 전,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죽었다. 내 위로 두 명의 오빠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회사를 나에게 물려주었다. 그때 나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장례식 이후 나는 내 어깨에 얹혀진 짐들로 매일같이 헉헉거렸고 늘 악몽을 꾸었다. 내 객차를 아프리카 관광 열차에 연결한 것도 최소한 창 밖 풍경만이라도 낫게 꾸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2등 식당칸에서 만났다. 나는 그에게 내가 국제철도회사의 새 지배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그 역시 자기가 만주국에서 간신히 탈출해 온 정치범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우리는 열차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허물없이 어려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내 관심을 끈 것은 대화가 한참 진행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우연히 이야기는 열차여행으로 흘러갔고 나는 깊은 생각 없이 국제철도회사가 세계사에 끼친 공적에 대해 이야기 했다. 국제적인 운송 시설이 모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영리 회사에 의해 독점됨으로써 국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깨지게 되고 세계는 보다 평등해진다는 것. 이 생각의 일부는 아버지가 고용한 가정교사들이 심심하면 내 머릿속에 주입했던 것이지만 상당부분은 내 자신의 생각이기도 했다.
내 미래의 남편이 될 남자는 나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는 어떤 영리 회사도 주변 상황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독립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맞섰고 나는 회사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큼 강대하다고 받아쳤다. 우리는 한참동안 피터지게 싸웠다.
논쟁은 저녁까지 이어졌지만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대신 그는 나를 14번 객차의 3등석 승객들이 연 신년파티에 초대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매우 진부한 감정, 그러니까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부자집 딸이 거친 하층 부류 사람들의 조잡한 삶을 접하게 되면 대부분 거치게 마련인 그런 열광에 사로잡혔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쯤 위였고 다 합쳐도 평생 동안 겨우 한 달 정도밖에 열차에서 내린 적이 없는 나같은 어린애가 보기엔 정말 모든 일들을 다 겪은 남자였다. 만약 지금 그를 다시 만난다면 그의 겉멋 부린 어설픔에 웃음만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 그는 나를 구슬려 열차 밖으로 꿀어낼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갑작스럽게 굳어진 대지 때문에 현기증과 구토에 시달리느라 그 데이트는 결코 로맨틱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3 개월 뒤, 나는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보다는 실리 때문이었다. 나는 죽은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회사 이사들과 맞서기 위해 동료가 필요했다. 그 남자가 아니더라도 이사들에게 적당히 험한 소리를 읊어줄 급진 성향의 남자를 아무나 잡아 남편으로 삼아야 할 판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적당한 자리를 하나 주고 내 부하로 두었다. 그 이후로 데이트 때의 상황은 역전이 일어났다. 내가 ‘보도 잠자리’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 역시 ‘철도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들의 신혼 생활에 대해 그 흔들림만큼 끝없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에게 있어서 열차는 여행하기 위해 있는 것이고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 수는 없었다. 그는 나와 회사가 목적과 과정을 착각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결국 남편 주장에 따르면 국제철도회사가 이런 정신 나간 사업을 3세기 동안이나 끌고 온 것도 우리가 진짜 미치광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남편을 무시했다. 끝없이 불평을 해대고 멀미를 해댔지만 그는 나에게 여전히 쓸모 있었다. 그는 이상들을 불안하게 했고 나는 별 어려운 없이 그들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었다. 남편은 불평쟁이였을 때 가장 쓸모가 있었기에, 나는 그가 열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마다 막았다.
지치고 지친 그가 엉뚱하게도 그를 박제로 만드려고 했던 고국 만주국에 팔을 벌린 것도, 이사들이 믿는 것처럼 원래부터 스파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땅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슬프게도 그는 동아시아 구석에 붙은 별 볼일 없는 빈국이 국제철도회사를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었다.
호주머니가 두둑한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내 개인 금고를 잔뜩 후벼 파고 침실에서 나오는 남편을 중역실로 불러들인 뒤 목뼈를 부러뜨려 죽인 사람은 만덜레이 호의 2급 기관사였다. 철로 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의 권한 아래 놓여 있었지만 일단 시체가 열차 밖에 버려지면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기관사는 우리가 탄 열차가 인도네시아에서 벗어날 때까지 시체를 움켜잡고 열어놓은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열차가 공해에 도달하자, 나는 그에게 눈짓을 했고, 그는 콘크리트 블록을 단 시체를 바다에 던졌다. 나는 그가 시체를 안고 있는 동안 담배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준 다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입이 무겁고 사디즘과는 거리가 먼 선량하고 믿음직한 체로키족이었다. 나는 그뒤로도 개인적인 처형에 그를 종종 기용했다.
3
350여 년 전, 국제철도회사의 제 1대 두목이 러시아에서 그의 첫발을 내딛었을 때, 그가 싸워야 했던 것들은 군소철도회사들의 반항이 아니라 거만하게 자기의 좁은 땅덩어리 위에 버티고 서서 외지인들을 의심스럽게 내려다보는 군주들과 참주들, 공화국의 통령들이었다.
두목은 이들과 맞서기 위해 극도로 과장된 그의 중립주의를 선전했다. 프랑크인들이 콩고 반란군들을 공개처형하는 광경을 관람하며 그는 땅콩을 씹었다. 고려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사지를 찢어 개한테 먹이는 동안 그는 원유회를 열었다. 집무실 벽은 온갖 무자비한 상황 속에서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 사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일종의 자기 무장용이었다.
그 사진들은 지금 모두 창고에 있다. 치운 사람은 아버지였다. 국제철도회사는 오래전에 가짜 중립주의를 속으로 다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우리는 세계를 바꾸었다. 세상이 우리의 독점을 어떻게 생각하건 이미 그들은 우리 없이는 살 수 없었다.
남편은 어떻게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별 다양한 이론들을 다 내놓았지만 그가 했던 일들이 다 그런 것처럼 다들 겉보기만 그럴듯한 탁상이론에 불과했다. 나는 그가 떠드는 동안 계산자로 새로 팔 터널에 들어갈 돈을 계산하거나 새 독점 규정에 항의하는 이사들에게 번지르르한 변명을 구상했다. 남편한테서 무언가 배운 게 있다면 그건 속 빈 말들을 그럴듯하게 짜맞추는 방법이었다.
결국 나는 독점규정을 밀어붙였다. 지금도 종종 말하지만, 그 바보 같은 이사들을 구석에 몰아붙이고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았더라면 태평양 횡단 철도 공사의 완공은 다음 세기에나 보았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수십 개의 철도와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리버풀과 뉴암스테르담을 잇는 대양 횡단 철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사들의 주장처럼 더 이상의 거대 공사는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평양 횡단 철도 공사에는 세계 일주 철도 완성으로 우리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목표가 있었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메리카를 연결함으로써 지금까지 가장 미약했던 남아메리카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을 강화 시킬 수 있었다. 태평양 횡단 철도는, 회사 밖의 사람들이 세계 정복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세계 평준화라고 부르는, 회사의 목표를 향한 일보 전진이었다.
1,232명이 공사로 죽었다. 243명은 사고로, 나머지 사람들은 해상운송연합의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 숫자는 대서양 횡단 철도를 세우다 죽어간 17,210명에 비하면 하찮은 숫자였다. 다섯 차례의 폭탄 테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겨우 24년 만에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대서양 때에는 73년이 소요되었다.
태평양의 작은 섬들을 징검다리처럼 밟아가며 이어지는 철도의 끝에는 아즈텍 신성 공화국이 버티고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심장에서 뽑은 파로 목마른 제신들을 살찌우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전자 기계들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위에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입법신학자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어떻게든 공사가 끝나기 전에 신학자들을 구워삶아야 했다. 우리는 이미 공사 허가는 받아낸 상태였다. 하지만 신학자들이 그들의 피에 굶주린 경전에서 뽑아낸 헛소리들을 내세우며 자국 내 철도 독점 운영권을 고집한다면 회사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50명이 넘는 회사의 스파이들을 동원한 끝에, 나는 정치적으로 유통성이 있고 쉽게 뇌물 공세가 먹힐 것 같은 남자 둘을 골라냈다. 나는 그들의 해외 휴가 여행 스케줄을 알아냈고 그가 우리 회사의 열차를 타게 주선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남아메리카 철도 회사 3분의 1은 우리 소유였다.
그들이 대륙 횡단 열차에 오른 저녁, 나와 남편은 식당칸에서 그들과 우연인 척하며 마주쳤다. 그들은 내 얼굴을 알아보았고 내 등장에 놀라지도 않았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부당한 수익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이가 든 쪽이 기대하는 것은 뇌물밖에 없는 것 같았기에 나는 그를 남편과 함께 2층 전망대로 내쫓았다. 남편이 짜증나는 정치적 설교를 늘어놓으며 은근히 회사 일을 훼방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설교로 타락한 늙은이의 돈 욕심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으니까.
젊은 남자가는 보다 신중했다. 그도 분명 돈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산중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든 우리와의 거래를 통해 정치적 실리와 뇌물 모두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회사를 이끌어오면서 꾸준히 쌓아왔던 감언이설의 실력을 다시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화국의 전자 기술을 예찬했고 무역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과장했으며 마지막에는 회사의 불간섭주의를 다시 못박았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꽤 영리했다. 그는 아즈텍의 섬세한 전자 장난감만으로는 철도가 앞으로 가져올 무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옛 경전이 생각하는 기계의 발명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즈텍의 전자 산업 역시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는 꼬치꼬치 우리의 게획을 캐묻기 시작했고 대화는 우리의 불간섭주의와 그들의 종교 쪽으로 흘러갔다.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는 우리가 그를 타락한 정치가로만 여기고 있다고 믿게 하고 싶었지만 그의 진짜 가치는 그가 성직자라는 데 있었다. 회사가 마음놓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경전과 교리의 개정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그건 지금 꺼내야 할 카드는 아니었다.
그는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어조는 거칠어졌고 질문도 단도직입적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회사는 테베나 고려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화국의 뿌리부터 뒤집어엎을 것이 아닌가? 그것도 화사가 소유한 몇 줄의 철도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말이다. 철도로 인해 공화국의 종교와 삶의 방식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나는 국제철도회사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변화의 시대에 살기 때문이다. 테베와 고려가 망한 이유는 그들의 정부가 옳지 못한 토대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즈텍 신성 공화국도 그런가?
지나치게 나간 질문이었다. 그는 좋은 교육을 받은 교양있는 남자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권 통치가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공화국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무의미한 정치적 수사를 늘여놓으며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어떻게든 그를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제 1대 보스가 사용했던 방법을 끄집어냈다. 약간의 설득 끝에 나는 그들의 인신공회 의식에 초대받을 수 있었다.
4
그는 이제 죽고 없다. 아즈텍에서 반종교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그의 동료처럼 잉카로 내빼지 않았다. 우리가 이틀 전에 미리 정보를 흘렸는데도, 그는 우직스럽게 신전에 남아 의식을 집전했다. 성난 군중은 그의 심장을 도려냈고 시체를 갈가리 찢어 철로에 뿌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또 하나의 동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는 순교자였을까?
모르겠다. 그는 내 앞에서는 순교자처럼 행동한 적은 없었다. 회사는 그에게 꽤 많은 돈과 외교적 특권을 제공했고, 그는 그 중 어느 것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였던 타락한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탐욕스러웠다. 그는 우리가 지불한 돈으로 새 별장을 샀고 그의 정부들에게 보석을 뿌렸다. 그가 린치당할 때 손에 들고 있던 황금자루가 달린 제식용 흑요석 칼 역시 우리가 지불한 돈으로 산 것이었다.
우리가 사들인 입법신학자들이 교리 개정을 위해 싸우는 동안 우리의 철도는 조금씩 그들의 영토를 향해 몸을 늘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그를 데려와 공사 현장을 구경시켜주곤 했다. 나는 아직도 대륙 횡단 철교의 거대함에 매료되어 어린 소년처럼 다리 위를 뛰어다니던 그의 모습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그가 보았던 것은 폭 21미터, 높이 57미터, 길이 15,400킬로미터의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괴물이었다. 이 괴믈들이 해수면 181미터 위에 뜰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2,566,764개의 기둥들은 그 하나하나가 초모룽마의 높이에도 견줄만 했다. 그러나 부피와 길이는 다리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수많은 화학 공장과 발전소, 그리고 이를 돌리는 수십만 명이나 되는 인원에 비하면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었다. 미완성의 교가가 도살된 레비아탄처럼 검불긍ㄴ 속을 드러내고 있는 공사 연장에서 인간들은 개미보다 작아 보였지만 그 왜소함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괴물을 만들어낸 개미들이었다.
“이 모든 거대함은 유한한 인간들의 허약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남편은 크레인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귀엽다는 듯 쏘아붙였다.
“지금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 괴물 같은 철덩어리도 언젠가는 기울어지고 가라앉을 것입니다. 아마 이전에 하늘을 나는 보다 효율적인 기계가 발명되거 다리가 쓸모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건 다리는 잊혀지고 무이미 해질 것입니다. 하늘에 닿으려 발버둥 쳤던 바빌로니아인들의 무익한 노력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의 탑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건축물의 크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습니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일이지요. 중요한 건 인간 정신입니다. 에드워드 드 비어의 소네트 한 편은 이 다리에 들인 모든 돌덩어리와 철골들을 다 합한 것보다 더 거대하며 더 장수할 겁니다. 다리의 거대함은 감각적 인상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자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신이란 약하고 비틀린 육체가 내뿜는 입김에 불과합니다. 육체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정신도 그에 따라 변하고 휘청거립니다. 선생이 예찬한 드 비어의 시도 우리나라에서는 천박한 연애가에 불가합니다. 선생이 본 그의 거대함이야말로 주관적인 환상입니다. 잔정한 정신적 거대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다리는 진짜입니다. 다리를 구성하는 철골도 진짜이며 이를 지탱하는 물리 법칙과 그를 구성하는 수학 역시 불변입니다. 이는 감각적 환상이 아닙니다. 만약 달이나 화성에서도 사람이 산다면 그들에게 우리를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창조물은 바로 이 다리입니다.
다리가 잊혀진다면 드 비어도 잊혀집니다. 그러나 영원한 망각 속으로 사라질 드 비어와는 달리 다리의 폐허는 잊혀진 뒤에도 남아 우리의 존재를 알릴 겁니다. 물고기들과 조개들은 기둥에 집을 짓고 철새들은 무리 이동을 위한 표적으로 이용하겠지요. 다리는 우리가 멸망하고 개나 원숭이 같은 다른 동물들이 지력을 얻어 문명을 건설할 때까지 남을 겁니다. 그들은 남은 기둥 위에 새 교가를 세우고 사라진 우리를 추억하겠지요.”
나는 반박하려고 막 입을 벌린 남편을 허겁지겁 뒤로 끌어당겼다. 남편은 좋은 정치가도, 말 상대도 아니었다. 수억을 들여 간신히 쌓아올린 좋은 관계를 불평쟁이 하나 때문에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작은 심부름거리를 주어 남편을 배로 쫓아버린 뒤 예절바른 말로 손님의 통찰력을 칭찬했다.
5
다리는 완성되었다. 회사의 철도는 운하를 따라 그들의 수도로 흘러 들어갔다. 아즈텍 국수주의자들의 테러가 한두 번 일어났지만 피해는 대단치 않았다. 신성 정부의 공식적인 반발은 없었다. 우리가 먹인 뇌물은 낭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 남편은 운하 도시를 8자 모양으로 누비는 순환 열차 끝에 매달린 방탄차에 머물렀다. 10분마다 서는 완행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즈택의 다른 철도는 우리 회사의 철도와 규격이 달랐다. 이 나라는 아작 정복해야 할 신천지였다.
남편은 다시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멀미 때문은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봐야 할 참사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베개로 얼굴을 덮고 끝없이 부푸는 상상력을 제어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휘칠로포치틀리와 그의 매정한 사제들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고 있었다.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세부 사항은 변했지만 기둥은 언제나 같았다. 살아 있는 희생자의 몸에 칼을 박아 심장을 꺼내는 것이다.
우리가 탄 차는 네 시간 반마다 한 번씩 테오칼리 대사원을 지나쳤다. 며칠 남지 않은 분향식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원 지붕 위에 설치된 대형 영상판은 벌써 인간 제물로 선택된 사람들의 얼굴을 방송하는 중이었다. 몇 명은 죄수들이었고, 몇 명은 자발적인 지원자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정말 어린아이었다. 미친 사람들 같으니, 어떤 뇌를 가졌길래 저런 학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종교적 제약만 없었다면 기계 원숭이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남편의 불평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고민 때문에 나랑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멀미로 충혈된 그의 눈을 들여다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인신공회에 대한 거부감과 철도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심이 열심히 충돌하는 중이었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그의 방을 떠났다.
나는 일에 매달렸다. 마음이 바빠지자 뱃속도 나아졌다. 적어도 나는 남편보다 훨씬 편안한 닷새를 보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다시 냉혈한이라고 쏘아붙였지만 무시했다. 세상에는 그의 짜증을 받아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분향식 날이 되자 내 속은 다시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 달 전부터 창고에서 부활해 내 책상 위에 버티고 서 있는 두목의 사진들을 노려보았다. 궁금해졌다. 이 산적같이 생긴 무심한 남자는 프랑크인들의 학살 속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콩고인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동안에도 땅콩이 제대로 입에 들어가긴 했을까? 그게 소화가 되기는 했을까? 나는 확대경을 들고 그의 얼굴 구석구석을 쑤셔보았지만, 그 무덤덤한 표정에서 다른 감정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어려웠다.
대신 나는 그의 무표정함을 모방했다.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눈을 가늘게 내리뜬 그 천박한 표정을 거울 앞에서 서너 차례 반복하다보니 서서히 자신감이 생겼다.
마침내 준비가 된 나는 투덜거리는 남편의 손을 잡아끌고 사원 역에 내렸다. 역에 가득 찬 환영인파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나는 최초의 태평양 횡단 특급 열차가 서쪽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열차의 도착 시기는 우연히도 분향일 날짜와 같았다. 아즈택인들은 당연히 이를 의식적인 스케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착각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열차는 예정 시각보다 2분 30초 늦게 도착했다. 객실은 꽉 차 있었지만 정작 내리는 사람은 서넛에 불과했다. 회사 사람들을 제외하면 다른 승객들은 세계 일주 관광객들이었다. 모두 북쪽으로 올라가 대서양 황던 철도를 타고 다시 그들이 떠났던 대륙으로 돌아갈 사람들이었다. 관광 삼아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아즈텍의 법률은 외국인들에게 가혹했다. 헛나온 말 한마디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간단한 환영식이 끝나자, 우리는 대사원으로 안내되었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땅바닥 때문에 내 몸은 종종 휘청거렸지만, 남편은 이미 내 약점을 감추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맨땅을 걸을 때는 늘 솜씨 좋은 무용 선생의 리드에 따라 춤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내가 그를 그리워한다면, 그건 열차 밖의 산책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그의 안정감 때문이었다.
사원은 브리튼의 구기 운동장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단지 보다 작았고 관객들이 덜 열성적이었으며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첨단 기기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브리튼이었다면 벨벳 잔디를 깐 텅빈 공간이었을 중심부에 작은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흑요석으로 만든 제단이 놓여있었다.
내 옆자리에서는 우리의 입법 신학자 양반이 새로 만든 흑요석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칼은, 아즈텍의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첨단과 원시의 기묘한 결합이었다. 그의 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타제석기였다. 이처럼 정교한 날은 전자뇌를 단 세공기계를 이용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었다. 이 나라의 또 다른 아이러니였다. 아즈텍은 제대로 된 전자뇌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전자 기술이 발달한 유일한 나라였지만 정작 그 전자뇌를 법률로 금지한 유일한 나라이기도 했다. 아마 이런 불법적인 타제석기 제조 기계의 유일한 수요자도 아즈텍인들뿐이리라.
흑요석 칼을 만지는 그의 손놀림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나는 수많은 초보 타락자들을 거쳐 왔으므로 그가 왜 그렇게 불안하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그의 양심과 충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믿지도 않는 종교의 이름으로 합법적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아니면 뇌물로 불법적인 제식 기구를 사들인 것일까?
사원 곳곳에 달린 스피커가 요란한 제식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는 칼을 자루에 다시 집어넣고 허리띠에 걸친 뒤, 피라미드로 이어지는 이동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여기서부터 내 기억은 흐릿해진다. 갑자기 열광하기 시작한 관중들과 피라미드에서 흘러나오는 흥분제의 연기 때문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내 기억이 내 경험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나중에 들은 정보와 책에서 읽은 지식이 뒤섞여 얽힌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자. 입법 신학자 양반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도착하자, 27명의 희생자들이 전기 자동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는데,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반나절 전부터 맡고 있던 흥분제에 취해서였다.
희생자들은 한 명씩 티타늄으로 만든 길쭉한 판에 묶였다. 피라미드의 빗면을 따라 올라간 판은 제단에 고정되었고 우리의 입법 신학자 양반의 칼이 움직였다. 희생자의 피에서 흘러나온 피는 정교하게 새겨진 수로를 타고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피라미드는 꼭대기에서 서서히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사고는 스물세번째 희생자가 피라미드에 막 올라갔을 때 일어났다.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스물세번째 티타늄 판이 유달리 흔들렸고 치켜든 입법 신학자의 칼이 번뜩였을 때, 판에 묶여 있던 희생자가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스물세번째 희생자는 아직 열두 살도 안 된 것 같아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다른 희생자들과는 달리 그렇게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표정으로 입법 신학자를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눌린 신학자 양반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고 창피스럽게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때 아이는 달아났다. 아이가 어떻게 피라미드에서 탈출했는지, 어떻게 수백 명이나 되는 감시병들을 피해 군중 속으로 사라졌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이는 없었다.
분향식은 엉망이 되었다. 남은 네 명의 희생자들은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살당했다. 은그릇에 담겨져 있던 심장 두 개는 피라미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으깨졌다. 흥분한 여자들은 기절했고 남자들은 게거품을 물며 날뛰었다. 소란스럽기는 대사원 밖도 마찬가지였다. 영상판이 이 난장판을 생중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허겁지겁 사원을 빠져나왔다. 구두 굽이 부러져 걸을 수 없게 되자 뒤에 있던 경호원이 나를 업고 뛰었다. 역까지 걸린 12분이 하루처럼 느껴졌다.
역에 도착하자 나는 역에 정차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행 특급 열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전용 객실에 도착하자 나는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지고 긴 의자에 몸을 눕혔다. 내가 신경을 안정시키려고 기를 쓰는 동안 남편은 미친 사람처럼 두서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방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잠시 뒤 역장이 들어왔다. 그 역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듯 쓰고 있던 모자를 꼬깃꼬깃 접고 있었다. 나는 당장 열차를 출발시키라고 명령했다.
열차는 서서히 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신이 조금씩 맑아져갔다. 움직이는 열차의 진동만큼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없었다. 나는 창문을 반쯤 열고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운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운하에서 둑으로 기어 올라오는 중이었다. 아이의 벌거벗은 몸은, 반은 운하의 물로 반은 피라미드에서 흘러나온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둑으로 올라온 아이는 우리 열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주변이 갑자기 환해졌다. 내가 아이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 순간, 운하관리국의 보트 역시 아이를 발견했던 것이다. 나와 남편은 허겁지겁 일어나 객차 뒷문을 얼었다. 아이와 열차 사이의 거리는 10 여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함을 내, 얘야! 뛰어!”
나는 외치면서 팔을 내밀었다.
아이는 두 번이나 넘어졌지만 용케도 열차를 따라왔다. 2분 정도의 필사적인 질주 끝에 나는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아이를 객차 안으로 잡아당겼다. 아이는 바닥에 누운 채 헐떡거리면서 천장을 노려보았다. 객실 바닥에 까린 양탄자에 아이의 손과 발에서 흘러나온 피가 스며들었다.
보트의 스피커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즈텍어로, 다음에는 공용어로, 되풀이될 때마다 조금씩 표현이 바뀌었지만 모두 같은 뜻이었다. “열차를 세우고 아이를 내려놓으시오.”
남편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에게 화사 전용 수신호를 보냈다. 남편이 내가 지시한 신호를 차장에게 전달하는 동안 나는 일어나 객차 뒤로 걸어갔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거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들이 나에게 명령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열차와 철도는 우리의 영토였다. 법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열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뒤쳐진 보트에 남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뒷문을 닫았다.
객실 안에는 남편이 아이를 그의 침대에 눕히고 손발의 상처를 씻어주는 중이었다. 의사가 달려오자 남편은 아이한테서 손을 때고 나에게 다가왔다.
“국제철도회사 역사상 최악의 날이군. 당신 아버지가 당신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성스러운 회사의 중립주의를 멜로드라마틱한 감상으로 날려버리다니!”
“자랑스러워하셨겠지.”
나는 목소리에 감정을 섞지 않으려 노력하며 간신히 대답했다.
남편은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한참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살짝 입을 당겨 웃으며 그의 미소에 답해주었다.
내 미소는 그가 생각했던 의미는 아니었다. 나의 행동은 결코 회사를 궁지로 몰고 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우리의 가짜 중립주의는 오래전에 수명이 끝난 터였다. 태평양 횡단 철도가 아즈텍 영토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입법 신학자 양반과 신성 정부의 운은 다해가고 있었다. 회사의 스파이들의 지원을 받은 반정부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세력이 강했다. 아이의 탈출 역시 사고라기보다는 행운이었다. 지금까지 회사를 믿지 못했던 반종교 혁명가들도 이제 우리가 그들을 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그러나 그 순간만은 나도 그 모든 계산들을 잊고 우리의 비이성적인 결함에 대한 남편의 수줍은 예찬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의 오해를 바로잡아주는 대신,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과 함께 복도 구석에 서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운하도시의 흐릿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열차가 아즈텍을 떠난 뒤에도 그의 옆얼굴에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의 끝자락이 남아있었다.
Ⓒ듀나, [태평양 횡단특급], 문학과 지성사
-FIN-
사실, 듀나의 저작목록 중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이 태평양 황단 특급이다. 기괴하고 고딕적인 세계관과 증기기관이 지배하는 미래사회는 정말 내 취향에 딱 맞는다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후속편을 만들거나 장편하나를 쓸 수 있는 좋은 소재 같은데 장편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가끔 나오는 역사 페러럴 월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준다. 뉴 암스테르담이라든지 에드워드 드 비어가 대표적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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